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홈쇼핑, 마냥 유쾌해 보이는 이 홈쇼핑 속에도 심도 있는 마케팅 기법들이 숨어 있다. 그중 '숫자 9 마케팅'은 10,000원과 9,990원처럼, 금액상의 큰 차이는 없지만 실제 금액 차이보다 훨씬 더 할인이 되었다는 인지를 심어주어 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10,000과 9,990원의 차이를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10원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015B(윤종신)의 '텅 빈 거리에서(1990)’를 오랜만에 듣게 됐다. 이 애절한 노래의 끝 절 가사 “외~로운 동전 두~개뿐~”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때를 생생하게 연상케 하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그때의 풍경을 떠올리며 커피 한 모금을 마시다가, 문득 화폐의 가치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요즘은 정말 10원의 가치가 많이 떨어졌구나~", "이제는 10원이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네~"하고 말이다. 



과거엔 10원의 가치가 명백하게 있었다. 언제나 주머니 속에는 여분의 비상 동전들이 있었다. 그 동전들은 '공중전화’를 이용할 때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잔돈이 없으면 많이 불편했었다. 또한, 물건을 사고 나서 거슬러 받은 10원짜리 동전들은 '돼지 저금통’ 속으로 들어가 어느새 영화 몇 편은 볼 수 있을 정도의 적잖은 목돈이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맥주 병’을 모아 팔면 병당 몇 십 원 씩 되돌려 받아 용돈으로 쓴 적도 꽤 있었다. 이렇게 10원은 단순한 동전의 개념을 넘어, 당시 우리들의 생활 속에 깊은 추억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10원’은 거의 쓰이지 않고 있지만 홈쇼핑에선 여전히 10원의 가치는 존재한다. 바로 '숫자 9 마케팅'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1만 원의 상품이 있다고 가정을 하고, 그 상품 가격에서 10원을 빼보자. 1만 원 빼기(-) 10원은 9,990원인 셈이다. 만 원대의 가격 단위가 천 원대의 단위로 순식간에 낮아진다. 체감하는 가격의 차이는 '10원’ 이상의 효과가 있어서 '숫자9’로 끝나는 홈쇼핑의 가격들은 소비자의 가격 경계심을 무장 해제시킨다.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는 가격의 경쟁력으로 유입되는 상황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홈쇼핑의 가격엔 숫자 '9’가 많이 쓰인다 



그러면 '숫자 9 마케팅' 역사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예전 TV프로그램에 소개된 바 있는 이야기가 재미있어 담아본다. 1930년 초 미국 대공황 직후, 벌이가 쉽지 않았던 종업원들이 돈을 보관하는 '금전 출납기’에 돈을 넣지 않고, 자신의 주머니에 슬쩍 넣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거스름돈 없이 물건을 1달러 2달러 식으로 팔게 되면 돈을 훔쳐도 흔적이 남지 않게 되자, 고심한 한 주인이 물건값을 1.99달러 2.99달러처럼 '.99’달러로 가격을 책정한 것이다. 


그로 인해, 종업원은 손님의 돈을 거슬러주기 위해선 '금전 출납기’를 어쩔 수 없이 열어야 했고, 주인은 '금전 출납기’를 열 때 울리는 소리로 도둑질의 흔적을 눈치챌 수 있어 종업원들의 손버릇을 고칠 수 있었다는 일화다. 결국, '숫자9’마케팅은 상품을 많이 팔리게 하려는 의도에서 태생한 것이 아니라 도둑질을 방지하려는 것이 목적에서 탄생한 것이다. 





혁신은 불편함으로부터 나온다. 도둑질을 막으려 했던 주인의 이야기에서 '1센트’의 숫자 마케팅을 배우고, '10원’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홈쇼핑을 통해 '세상에 하찮은 것은 없다’는 명심보감의 '地不長 無名之草(지부장 무명지초)’ 를 되새기게 된다. 사소한 불편함이 혁신을 만드는 세상이다. 지금부터 느껴보면 어떨까? 무엇이 '진짜 불편한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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